"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에도 성장했다. 올 상반기에는 내수 시장 점유율 52%를 달성하자"(1월 14~15일 2010년 상반기 판매촉진대회)

"상반기 시장 점유율이 떨어졌다. 하반기 시장도 낙관적이지 않다."(7월 23~24일 2010년 하반기 판매촉진대회)

6개월 전과 후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1월 대회가 자신감이 넘치는 축제의 장이었다면 7월 대회는 명예회복을 벼르는 출정식이나 다름없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경주호텔에서 열린 하반기 판매촉진대회에서 "고객이 떠나지 않도록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지혜로운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웠다. 일순 양승석 글로벌영업본부장, 신영동 국내영업본부장 등 600여명 참석자들의 얼굴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지난해까지 50%선을 유지하던 현대차 국내 시장 점유율은 올 1월 50.1%에서 지난달 40%로 추락했다. 상반기 누적 점유율도 45.23%로 올해 내수점유율 목표인 52%에 크게 밑돌고 있다. 정 부회장이 역설한 '위기론'의 실체다.

반면 경쟁차들은 약진했다. 아우인 기아차는 상반기 국내 시장에서 22만9690대를 판매해 역대 최고인 31% 점유율을 기록했다. 르노삼성도 11.4%로 처음 10%대에 진입했으며, GM대우와 쌍용차도 전년 동기 대비 37.3%와 33.3% 증가한 7.8%, 2%를 각각 달성했다. 수입차들도 선전하면서 6.64%로 사상최대를 기록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상반기 신차 부재로 경쟁사에 시장을 많이 빼앗겼다"면서 "하반기에는 점유율 회복을 위한 공격적인 마케팅에 돌입하라는 것이 정의선 부회장의 주문"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가 하반기 대반격의 카드로 내세운 것은 아반떼·쏘나타·그랜저 '쓰리톱'이다.

8월 출시되는 준중형급 신형 아반떼는 사전계약 접수가 시작된 지 닷새만에 1만대 예약이 완료되는 등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월드컵 효과를 이어가기 위한 마케팅도 속속 진행 중이다.

'피겨퀸' 김연아 선수가 아반떼 1호 시승자로 나선데 이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 전체를 아반떼 체험공간으로 꾸며 화제를 낳았다. 특히, 정의선 부회장이 아반떼 마케팅을 직접 점검하는 등 하반기 시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쏘나타도 마케팅 시동을 걸었다. 최근 전파를 타기 시작한 쏘나타 TV 광고는 '안전성과 디자인'을 한껏 부각하고 있다. 현대차측은 "정 부회장은 쏘나타가 좋은 차임에도 불구하고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면서 "국내보다는 국외에서 더 높이 평가받고 있는 점도 국내 마케팅을 독려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쏘나타는 미국 자동차 전문지 톱스피드가 선정한 '중형급 세단 톱10'에서 도요타 캠리, 폭스바겐 CC 등을 제치고 당당히 1위에 올랐다. 미국 최대 자동차 전문사이트 에드먼즈닷컴(Edmunds.com)이 선정한 '올해 주목할 차 10'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말에는 그랜저 후속 모델도 출시된다.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지만 쏘나타(YF)와 에쿠스를 적절히 융합한 디자인이 될 것으로 업계는 관측하고 있다. 현대차측은 "준중형급 아반떼, 중형급 쏘나타, 준대형급 그랜저로 이어지는 라인업이 대대적인 마케팅에 돌입하면 하반기 시장이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면서 "당초 목표인 52% 점유율 달성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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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어 '나는 구른다(I Roll)'는 뜻의 볼보는 1926년 스웨덴 북부에서 태어났다. 소규모 공장이 즐비해 누구든지 부품을 조립해 차를 만들 수 있었던 시절이었지만 도로는 울퉁불퉁 엉망이었고 겨울은 춥고 길었다. 차들은 얼마 달리지 못하고 고장이 나기 일쑤였다.

공동 창업자인 아사르 가브리엘슨과 구스타프 라슨은 이 한계를 넘고 싶었다. 볼보가 '튼튼하고 안전한 차'의 대명사가 된 배경이다. 볼보는 승용차 부문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트럭, 버스, 항공엔진 등으로 영역을 넓혀갔으나 90년대 실적 악화로 1999년 승용차 브랜드 '볼보'를 분사해 포드에 매각했다.

10년간 포드 그룹에 속해 있던 볼보는 올 3월 중국 지리자동차로 다시 둥지를 옮겼다. 인수금은 18억 달러. 지리자동차의 자본을 등에 업은 볼보는 연간 생산량 규모를 현재 40만대 규모에서 5년 이내 100만대로 확대한다는 복안이다.

볼보 최초의 차 야곱(1927년)

볼보의 첫번째 모델인 야곱(OV4)은 1927년 4월14일 스웨덴 룬드뷔 공장에서 태어났다. 고전적인 오픈카로 물푸레나무와 너도밤나무 원목으로 제작됐으며, 여기에 금속 박판 커버를 덮어 품격을 높였다. 강력한 차대, 활축 그리고 긴 원통형 스프링을 앞뒤로 장식한 것은 유럽보다는 미국 스타일에 가까웠다. 4기통 엔진으로 최고 속도가 90Km에 달했다.

최초의 6기통 차(1929년)

PV651은 볼보자동차 최초로 6기통 엔진을 얹은 모델이다. 기존 4기통 엔진과 비교하면 출력은 28마력에서 55마력으로, 배기량은 1944cc에서 3010cc로 늘어났다. 예술가인 마스올레가 디자인했으며 미국인들의 취향이 더 많이 반영된 탓에 볼보의 주 고객인 보수적이고 경제력이 있는 중산층들의 호감을 얻을 수 있었다.

조금 더 길어진 휠베이스(295cm)는 다리를 뻗을 수 있는 공간을 충분히 늘려줬고, 높은 지붕은 승객들이 모자를 쓰고도 여행하기에 충분했다. 히터는 193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장착됐다.

스웨덴 최초의 대중차(1946년)

2차 세계 대전 중 볼보는 스웨덴 군용차량 생산체제로 전환해 비도로 주행용 차량 등을 생산하는데 전념하는 한편 소형차 'PV 444'도 개발했다. PV 444 개발 과정에서 볼보는 세계 최초로 얇은 판을 겹쳐 만든 자동차 유리를 적용해 사고가 나더라도 운전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성공했다. 444 모델은 당초 계획된 생산 수량을 훨씬 뛰어넘는 20만대 판매고를 기록하며 스웨덴 대중차로 이름을 날렸다.

가장 안전한 차(1966년)

볼보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고 역설했던 볼보 144는 스포츠카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디스크 브레이크를 기본 사양으로 장착했으며, 에너지를 흡수하는 크럼플존과 접이식 조향대도 탑재했다. 허리를 감싸는 2점식이 아닌 가슴을 가로지르는 3점식 안전띠를 세계 최초로 사용한 것도 바로 이 차량이다.

측면 충격보호 추가(1991년)

볼보 850은 5기통 알루미늄 엔진, 전륜 구동, 자동차 조절벨트 릴 등의 신기술을 두루 탑재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측면 에어백. 덕분에 각종 연구 기관의 충돌 테스트에서 ‘가장 안전한 자동차’로 인정받았다. 외관도 볼보의 강인한 이미지를 잘 담고 있다는 평가다.

새로운 변화 '컨버터블'(1997년)

C70 컨버터블은 볼보 역사상 가장 독창적이고 고급 차종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사실 볼보는 안전의 이유로 오픈카 제작을 망설여왔지만 ROPS(전복보호시스템)과 커튼형 에어백 시스템 등을 개발함에 따라 컨버터블 시장에 본격 뛰어들었다. 세계적인 컨버터블 디자인 생산 기업인 이탈리아 피닌파리나와 합작했다.

젊은 볼보 '해치백'(2006년)

2006년 파리모터쇼에서 처음 선보인 '뉴 볼보 C30'는 독특한 디자인의 해치백 차량이다. 볼보가 기존의 남성 중심에서 여성 시장으로 한발 옮겨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모델이다.

특히 뒤태는 '어항'을 연상시키는 유리와 스웨덴 전통 목마의 곡선이 조화를 이룬다. '엉덩이가 예쁜 차'라는 별명도 그 때문에 생겼다. 자동차 키를 가방이나 주머니에 둔 상태에서도 시동을 걸 수 있는 키리스고(Keyless Go) 시스템도 탑재해 편의성을 높였다.

알아서 멈춰서는 차(2008년)

볼보 XC60은 자동차가 잘 달리는 것은 물론 잘 멈춰서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역설한다. 핵심은 시티 세이프티(City Safety)다. 이 시스템은 시속 30km 이하 주행 중 사고 위험 시 운전자가 반응하지 않더라도 자동차 스스로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선다. 30km/h 이상으로 주행 할 때는 앞 차와의 간격을 유지하고, 60km/h 이상일 때는 차선 이탈시 경고 신호를 보내준다.

보행자 추돌 방지(2010년)

올 하반기 출시될 예정인 볼보 S60은 보행자 추돌방지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탑재한다. 차 그릴에 장착된 레이더 시스템과 백미러 안쪽의 카메라가 도로 상황을 체크하다가 위험 상황이 발생하면 강력한 경고음과 함께 앞 유리에 붉은 빛을 비춰 경고한다. 이 순간 운전자가 즉시 대응하지 못하면 차가 스스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속도를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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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이리

1929년 7월9일, BMW가 자동차 생산업체가 됐다는 광고가 유럽내 주요 일간지들을 장식했다. 당시 베를린 소재 BMW 전시장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딕시(BMW 3/15)'라는 이름의 소형차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날 딕시로 시작된 BMW의 80년 역사는 '명차'의 다른 이름으로 오늘을 관통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BMW는 1913년 10월 독일 뮌헨서 비행기 엔진을 생산하던 때로 그 뿌리가 이어진다. BMW의 상징인 로고는 비행기 프로펠러를 형상화했고, 파란색과 흰색은 본사가 있던 바이에른 주를 상징한다. 1차 대전 후에는 오토바이로 업종 변경에도 성공했다.

비행기 엔진에 기반을 둔 기술력은 BMW의 힘이다. 이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 최근 BMW는 2010년 글로벌 판매량 전망치를 140만대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연초 발표한 130만 대보다 9% 정도 높은 수치다. 올 상반기 BMW는 전 세계적으로 69만6026대를 판매, 전년 동기 대비 13% 성장했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지도 15년이 흘렀다. 최고급 성능과 명차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벤츠와 양강구도를 구축했다. 올해는 국내 수입 자동차의 시장 점유율 20% 돌파를 노리고 있다.

명차 역사의 첫발 3/15(1929년)

BMW 최초의 자동차인 BMW 3/15는 딕시라는 이름으로 판매됐다. 원래 딕시는 자동차 제작사로 영국 오스틴세븐과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고 2좌석 자동차를 제작했다. 하지만 실적악화로 1928년 BMW에 넘어갔으며, BMW는 이듬해 딕시라는 이름으로 첫 모델을 출시했다. 3/15은 중저고속이 가능하고 엔진출력이 15마력이라는 뜻이다. 당시 대부분의 차에서 사용하던 값비싼 디젤연료 대신 가솔린을 사용했으며, 최고 속도는 75 km/h, 8→40 km/h 가속은 10초에 달했다. 1927년부터 1931년까지 2만5000대가 팔렸다.

스포츠카의 전설 328(1936년)

1936~1939년에 생산된 'BMW 328 로드스터'는 기품 있는 외관의 2리터 스포츠카다.
172번의 국내 시리즈와 141번의 국제 시리즈 우승에 빛난다. 1940년 1000마일 대회에서 전체우승과 팀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는 등 레이싱계의 전설로 통한다. 총 464대가 생산됐으며, 403대는 기본 모델, 남은 31대는 레이싱 스페셜 버전이다. 직렬 6기통 엔진에 배기량 1971cc, 최고 출력 4500rpm, 최고 속도 155km/h에 달한다.

가장 아름다운 차 507(1955년)

1955년 프랑푸르트 모터쇼에 선보인 BMW 507 로드스터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스포츠카 중 하나로 꼽힌다. BMW의 전설적 디자이너인 알브레이트 그라프 괴르츠가 디자인한 이 차는 가늘고 긴 측면 라인과 곡선미 흐르는 차체, 그리고 끝없이 이어진 보닛이 특징이다. 150마력에 최고 속도는 220km/h다. 한정 생산된 251대를 대부분 세계 유명인사들이 구입해 오늘날까지 도로 위를 달리고 있다.

BMW의 부활 1500(1962년)

벤츠와의 경쟁에서 밀리고 스포츠카 시장에서도 고전하는 등 파산 위기에 몰렸던 BMW를 회생시킨 걸작이다. 1년 전 열린 프랑크푸르트 모토쇼에서 자동차 디자인의 이정표를 세웠다는 격찬을 받기도 했다. 1500의 인기에 힘입어 BMW는 본격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기틀을 다지게 됐다. 1966년 본사가 있는 뮌헨 근교의 한스그라스 공장을 인수해 생산량을 확대시켰고 1500을 잇는 1600, 1600-2, 2500, 2800, 2800CS 등으로 전성기를 열었다.

2세대 BMW 포문 5 시리즈(1972년)

뮌헨 올림픽이 열리던 그해, BMW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패밀리 카 '5 시리즈'를 출시했다. 5 시리즈라는 이름은 과거 파산 위기에 몰렸던 BMW를 되살린 일등공신인 초소형 승용차 '이세타' 이후 다섯 번째 새로운 모델이라는 뜻이다. 5 시리즈의 첫번째 주자인 E12는 파격적 디자인의 대표주자인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했다. 5 시리즈는 1세대 E12 (1972~1981), 2세대 E28 (1982 ~ 1988), 3세대 E34 (1988~1996), 4세대 E39 (1996~2004), 5세대 E60/61 (2004 ~ 2010), 6세대 F10 (2010 ~)로 이어지면서 전세계적으로 500만대 이상 팔렸다.

엔트리 라인업 3 시리즈(1975년)

중협급 5 시리즈에 이어 컴팩트 세단인 3시리즈가 등장했다. 3시리즈의 1세대인 E21는 비행기 조종석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운전석 디자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후 2세대 E30(1982년), 3세대 E36(1991년), 4세대 E46(1998년), 5세대 E9x(2005년)이 잇달아 출시되고 있다.

고급형 7 시리즈(1977년)

1977년 메르세대스 벤츠의 S 클라스에 대항하기 위해 7 시리즈가 나왔다. E23은 7 시리즈의 포문을 연 차종이다. 7시리즈 출시로 BMW는 컴팩트 세단인 3시리즈, 중형 세단인 5시리즈에 이어 최고급 세단까지 라인업을 구축하게 됐다. E23에 이어 2세대 E32는 1987년, 3세대 E38은 1995년, 4세대 E6x는 2002년, 4세대 F01은 2009년 선보였다.

디자인 혁명 미니 (2001년)

미니는 BMC에서 1959년부터 2000년까지 생산하던 소형 자동차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자 독일 폭스바겐 비틀과 함께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인기를 받았던 차종이다. BMW는 '미니' 브랜드를 인수해 완벽한 프리미엄 브랜드 '뉴 미니'로 재탄생시켰다. 현재는 해치백, 컨버터블, 클럽맨 등 여러 가지 버전이 나온다. 지난 4월 열린 베이징모토쇼에서는 미니쿠페 컨셉트카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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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0시간 지붕에서 생활하면서 TV도 보고 인터넷도 즐겼다" 어느 노동자의 파업 소식이 아니다. 미국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기아자동차를 판매하는 한 딜러의 '괴짜 도전기'다.

스테판 테일러씨가 지붕 위 생활을 택한 것은 마케팅의 일환이다. 기아차 이전에 현대차 딜러로 활동할 때도 이같은 게릴라식 마케팅으로 화제를 낳은 바 있다. 그가 지붕에서 50시간 머물면서 판매한 자동차는 58대로 평균 판매량을 웃돈다.

지붕 마케팅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미국 록밴드 '키스(KISS)'의 팬들을 자신의 매장으로 초청해 파티를 가질 계획이다. 파티 이름은 록밴드 명칭을 본딴 'KISS, Kia Inventory Super Sale)'로 재치있게 지었다. 키스 팬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지금은 키스 팬이지만 훗날 기아차 팬이 될 것이라는 게 테일러씨의 믿음이다.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은 즐거워야 한다"는 철학을 역설하는 그는 지난 해 기아차 1600대를 판매한 데 이어 올해는 2000대 판매를 자신하고 있다. 테일러씨 얘기가 오토모티브뉴스 등 자동차 전문지에 실리면서 기아차 미국법인(KMA)도 뜻밖의 홍보 효과에 한껏 고무돼 있다.

기아차가 게릴라식 마케팅으로 성과를 거뒀다면 현대차는 '핀셋 마케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자사의 최고급 세단 에쿠스를 미국 시장에 내놓을 예정인 현대차는 구매층을 '연간 수입이 10만~12만5000달러인 50대 중반 남성'으로 특정하고, 이에 맞는 광고 마케팅을 준비하고 있다.

에쿠스 광고는 9월 중 인터넷에 먼저 공개되고, 10월 중 TV와 신문 등에 노출될 예정이다. 에쿠스가 10월 초에 출시될 것임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존 크래픽 현대자동차 미국법인(HMA) CEO는 "(에쿠스의) 타깃 고객은 1990년대 렉서스가 출시됐을 때 겨냥했던 계층과 겹친다"며 에쿠스가 렉서스급의 프리미엄 브랜드임을 역설했다.

현대ㆍ기아차는 지난 6월 미국 시장에서 8.4%(8만3111대)로 역대 최대 점유율을 기록했다. 5위 크라이슬러(9.4%)와의 격차는 1%포인트. 현대차의 핀셋 마케팅과 기아차의 게릴라식 마케팅이 이 격차를 얼마나 줄여줄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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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이리

최근 영화로도 부활한 추억의 미드(미국 드라마) '전격Z작전'은 자동차 찬가나 다름이 없다. 주인공이 손목 시계에 대고 "키트 도와줘"라고 말하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적들을 물리치는 인공지능차는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인공지능차 기술이 상상을 넘어 현실에서 이뤄지기 시작하는 요즈음, 그때 그 키트 역할을 맡았던 포드 머스탱도 변화와 혁신을 거듭해가고 있다. 1903년 미국 디트로이트의 허름한 마차공장에서 출발해 107년 역사를 자랑하는 포드의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도 스포츠카로 널리 알려진 머스탱의 발자취를 따라가보자.

머스탱 출시 첫해 41만대 판매(1964년)

1964년 4월 17일 뉴욕 월드 페어에서 처음 선보인 1세대 머스탱은 실용성과 주행성, 합리적인 가격 등으로 출시 첫해 41만대 이상 팔리는 대박을 터트렸다. 영화 007 시리즈 '골드 핑거'에도 출연해 주가를 한껏 올렸다.

고성능 스포츠카 도약(1965년)

머스탱은 1965년 패스트백 루프 디자인의 '쉘비 GT350'을 출시하며 고성능 모델로 이미지를 쌓기 시작했다. GT350은 세계적인 자동차 경주 대회인 나스카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던 코베트 스팅레이의 경쟁차로, 모든 개조는 'AC 코브라'로 유명했던 캐롤 쉘비가 맡았다. 쉘비는 섀시와 하체를 대대적으로 교체했으며, V8엔진 출력도 300마력 이상으로 높였다. 제로백(0→100km/h)은 6.3초, 최고 속도는 210km/h에 달했다.

머스탱 ‘빅 블록’ 엔진 화제(1968년)

포드 머스탱은 1세대의 성공을 잇기 위해 데뷔 3년만에 신형을 출시했다. 엔진은 120마력의 4.1리터를 시작으로 200/225/271마력의 V8 엔진을 장착했다. 특히 315마력의 6.4리터 ‘빅 블록’ 엔진은 큰 화제를 낳았다. 스티브 매퀵 주연의 '불리트'에 출연해 영화와 각별한 인연을 다시 한번 발휘했다.

오일 파동으로 크기 줄여(1974년)

1972년 오일 파동이 전 세계를 강타하면서 포드 머스탱 역시 각 엔진의 크기와 출력을 크게 줄였다. 1974년부터 1978년까지 출시된 머스탱 II는 섀시 등의 부품을 공유하면서 차체 사이즈도 작아졌다. 1975년까지는 V8엔진 없이 4기통 모델만 나오기도 했다.

유럽 스타일 적용(1982년)

1979년부터 1993년까지는 포드의 유럽 스타일이 전성기를 이룬 해로 기록된다. 해치백 스타일도 새로 선보였으며, 컨버터블 라인업도 추가됐다. 특히, 1982년 12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온 머스탱GT가 신바람을 일으켰다. 5.0리터 V-8엔진을 장착한 머스탱GT는 성능면에서 과거와 결별을 선언해 호평을 받았다.

머스탱 코브라 첫해 5000여대 판매(1993년)

1993년 포드 머스탱은 SVT(Special Vehicle Team) 코브라 버전을 처음 선보였다. 이때부터 SVT 코브라는 머스탱의 고성능 버전으로 자리잡았다. 5리터 엔진은 235마력을 발휘했고, 첫해 4933대가 판매됐다.

7세대 머스탱 디자인 확립(1994년)

1994년 출시된 포드 머스탱 7세대는 오리지널 스타일로 돌아간 동시에 현대식 디자인이 확립된 모델이기도 하다. 엔진은 145마력의 3.8리터 V6와 205마력의 5리터 V8이 주력이었으며, GT40의 실린더 헤드와 흡기 시스템을 적용한 코브라는 240마력으로 발전했다. 1950년에는 300마력의 코브라 R이 250대 한정 생산됐다.

머스탱 효자 종목(1999년)

포드 머스탱 8세대는 1999년에 더욱 빛을 발했다. 한 세대를 풍미한 파이어버드, 카마로 등이 판매 부진을 겪었던 것이 반해 머스탱은 여전히 인기를 얻으면서 포드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또한 2000년 5.4리터 엔진을 얹은 코브라 R과 머스탱 GT의 블리츠 에디션, 마하 1 에디션 모델들도 큰 인기를 얻었다. 2004년에는 미국 미시건 AAI 공장으로 생산 시설을 옮겼고 같은해 390마력의 슈퍼차저 버전이 나왔다.

머스탱 900만대 돌파(2008년)

포드 머스탱은 2008년 4월 누적 생산 900만대를 돌파했다. 정확히 데뷔 44년만이다. 900만대째 머스탱은 2007년 4월 17일에 생산된 GT 컨버터블. 포드는 머스탱 데뷔 4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스페셜 에디션 두 가지 모델을 출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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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정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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